60대에 다시 영어를 마주하며 깨달은
‘정답 영어’와 ‘소통 영어’의 차이.
보습학원 강사 시절을 지나,
영어를 사람을 잇는 언어로 다시 바라보게 된 기록이다.
이 글은 영어 공부 방법을 정리한 글이 아니다.
효과적인 회화 루틴이나 추천 교재를 소개하려는 목적도 없다.
다만, 영어를 가르쳤던 사람조차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
한 가지 마음에 대해
조용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보습학원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영어는 분명한 목적을 가진 과목이었다.
시험에 나오는 문법, 틀리면 감점되는 문장, 점수로 증명해야 하는 실력이 전부였다.
아이들의 성적은 곧 나의 성과였고, 영어는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도구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말했다.
“이건 시험에 꼭 나와. 절대 틀리면 안 돼.”
그 말은 책임감에서 나온 말이었고, 성실한 강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보면, 그 말들이 아이들에게서 ‘틀려도 말해보는 용기’를
조금씩 앗아가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이 남는다.
나 역시 영어를 문법과 단어의 조합으로만 다루었을 뿐,
사람의 마음이 오가는 언어로서의 영어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
학원 강사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다시 학습자의 자리에 서게 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어를 경험하고 있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입을 다무는 대신,
서툰 단어 몇 개로 내 마음을 전했을 때 상대와 연결되는 순간을
자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화상 영어 수업 중, 젊은 튜터가 개인적인 고민으로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던 날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console, discouraged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문장을 만들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아는 가장 쉬운 단어들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Don’t worry. Life is… very long.
Today is just one page of your book.
So, smile please.”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잠시 침묵하던 튜터가 이렇게 답해주었다.
“I really needed that. Thank you, my wise friend.”
그 순간, 정확함보다 진심이 먼저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와닿았다.
⸻
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시험에서 문법을 틀릴까 봐
늘 조심하던 영어 선생님이었다.
지금의 나는 틀려도 웃으며 “I’m so happy!”라고
먼저 말하는 60대의 영어 학습자다.
영어 실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영어를 대하는 기준이 달라졌을 뿐이다.
정답을 맞히는 언어에서, 마음을 건네는 언어로.
⸻
그래서 지금의 영어는 ‘공부’라기보다 ‘관계’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태도, 완벽하지 않아도 말을 건네는 용기,
틀려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여유.
이런 것들이 영어 안에 함께 들어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요즘 나는 수업에서 배운 표현을 그날의 내 일상과 일부러 연결해 본다.
오늘 점심 메뉴, 갑작스러운 폭설을 보며 든 생각,
별일 없어도 괜히 기분이 좋았던 하루를 영어로 바꿔본다.
그리고 그 문장이 입에 붙을 때까지, 천천히 소리 내어 말해본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영어는 책 속 문장이 아니라,
조금씩 내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
⸻
돌아보면 나는 영어를 오래 가르쳤지만, 정작 영어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깊이 묻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영어는 실력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나 자신과도 다시 연결되게 하는 언어였다는 것을.
조금 늦었지만, 그래서 지금의 영어가 오히려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
혹시 아직도 “틀리면 어쩌지?”라는 마음 때문에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를 조용히 전하고 싶다.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나조차,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진짜 소통’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서툴러도 괜찮고, 틀려도 괜찮다.
그 순간부터 영어는 시험이 아니라 사람에게 닿는 언어가 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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