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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인생의 가을목에서 만난 차마고도

아보하 언니 2025. 12. 29. 08:00

의도치 않은 알고리즘의 소음에 흔들리다 마주한 옛길 차마고도. 
수면 위로 꺼내놓고 보면 별거 아닌 듯했던 나의 고민들을,
그 길 위에서 가만히 내려놓게 된 기록입니다.



나는 본래 묵직하고 슬픈 장르를 즐기지 않는다.
일상도 버거울 때가 많은데, 굳이 화면 속에서까지
타인의 처절한 삶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날도 평소처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는 남편이
거실 TV 앞에 앉아 있었다.
식사 준비를 하며 거실을 오가던 나는
어느 순간, 슬며시 그 곁에 주저앉아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예순을 넘긴 나이에
계획에도 없던 험난한 옛길,
차마고도를 만났다.



오래된 길 앞에서, 마음이 잠시 멈췄다

카메라는 해발 높은 산자락을 천천히 훑었다.
안개에 젖은 벼랑길 한쪽으로
말들은 묵직한 짐을 비스듬히 이고 걸었고
사람들은 바람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고르듯 한 걸음씩 길을 이어갔다.

누군가는 세 걸음 걷고
가쁜 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였고
누군가는 손아귀에 작은 염주를 쥔 채
바람 소리를 가만히 듣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마음도 덩달아 멈춰 섰다.



산길에서 배운 건 속도가 아니라 ‘숨’이었다

험한 길일수록
빠르게 가려면 더 오래 쉬어야 한다는 걸
그곳 사람들은 몸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가 뒤처져도
재촉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쉬어가는 시간이
길을 이어가기 위한
당연한 과정처럼 보였다.



차 한 잔에 깃든 마음 하나

잠깐 쉬어갈 때
누군가가 들고 온 뜨거운 수유차 한 잔.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김이 가라앉는 걸 바라보는 침묵.
그 사이사이 들려오는 낮은 숨소리.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이
세상에는 분명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몸이 먼저 바닥에 닿을 때, 마음이 따라왔다

순례자들은
라싸까지 이어지는 길 위에서
세 걸음 걷고
온몸을 땅에 던졌다.

팔꿈치는 까지고
무릎엔 피가 맺혔지만
눈빛은 흐리지 않았다.

자신의 안녕이 아니라
세상 모든 생명의 평화를 비는 마음.

화면 속 갈라진 손등과
깊게 파인 주름을 보고 있으니,
평소 끙끙대던 허리 통증,
마음처럼 되지 않아 속 끓였던 날들이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인생의 가을목에서 바라본 길

이제 차마고도의 많은 길엔
아스팔트가 깔리고
자동차가 달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 옛길이
여전히 남겨주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해
그토록 빨리 달리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짐을
지고 있는가.



아직 말할 순 없지만, 품어보고 싶은 문장 하나

인생의 가을목에 서서
화면 속 그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험난한 인생길을
“아름다운 풍경이었다”고
단숨에 말할 자신은 없다.

가끔은 지나온 굽잇길을 돌아보며
긴 한숨을 내쉴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작은 소망 하나를 품어본다.

언젠가 이 여정의 끝자락에 섰을 때,
그 험했던 길들이
결국은 고마웠고 아름다웠다고
머뭇거림 없이
말할 수 있기를.



🌿 오늘의 질문

멈춰 선 자리에서,
당신은 무엇을 다시 들여다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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