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었던 날
계속 바쁘게 살고 있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마음만은 늘 앞서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글은 그런 시기에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춰 보았던 하루를 정리한 기록이다.
겨울비가 촉촉하게 골목을 적시던 날,
삼청동은 유난히 조용했다.
청와대 근처 오래된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도시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졌고,
그날의 공기 자체가 사람을 재촉하지 않았다.
⸻
한옥 북카페에서 마주한 느린 시간
주택가 깊숙한 곳에 자리한 한옥 북카페는
정원과 감나무, 잔잔한 조경이 어우러진 공간이었다.
방마다 전시된 달력들은
한 해를 급하게 넘기지 말고
천천히 바라보라는 메시지를 건네는 듯했다.
손그림으로 담아낸 일상의 풍경,
사계절을 차분히 이어 붙인 구성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지 않아도
충분히 충만할 수 있다는 감각을 남겼다.
전시를 서두르지 않고 둘러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속도가 한 박자 낮아졌다.
⸻
오래된 골목이 다시 다르게 보일 때
전시를 나와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십여 년 전에도 자주 지나던 길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마주한 삼청동은
이전보다 훨씬 차분하고 깊게 느껴졌다.
작은 소품 가게들,
시간이 묻어 있는 건물 외벽,
낮은 톤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대화.
이 동네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새로움보다 속도를 허용하는 분위기에 있는 것 같았다.
⸻
겨울비와 한옥, 그리고 쌍화차
비가 조금 더 굵어지자
한옥 차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공간에는 한방차 향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쌍화차 한 모금이 몸을 천천히 데워주면서
겨울비와 한옥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조화를
오랜만에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단순한 장면 하나가
하루 전체의 결을 바꿔 놓기도 한다.
⸻
느린 하루가 남긴 한 가지 관점
삼청동에서의 하루는
어디를 다녔는지를 기억하게 하기보다,
내가 평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살고 있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했다.
화려한 일정이나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천천히 걷고,
좋은 공간에 잠시 머물고,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속도를 낮추는 것만으로
하루는 충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아마 겨울이 주는 힘은
바로 이런 느림 속에서
일상에 작은 온기를 남기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당신에게도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어지는 날이 있나요?
그럴 때 찾게 되는 공간이나
스스로를 쉬게 하는 루틴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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