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어 공부 그 너머에 있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
수업 날이면 도망가고 싶어진다
일주일에 한 번, 화상영어 수업이 있는 날.
그날이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마음이 무거워진다.
도망가고 싶고, 미루고 싶고,
‘내가 이걸 왜 하지?’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든다.
지금 당장 영어를 쓸 일도 없고, 그렇다고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매주 이 수업을 예약하고, 또 떨리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걸까.
도서관 앞 공원, 서서 맞이한 화상영어
어제는 정해진 튜터 없이, 가능한 사람을 검색해 그날 대화를 이어가야 했다.
마침 도서관 근처에 볼일이 있어, 도서관 앞 공원에서 서서 수업을 하게 됐다.
더운 날씨에 머리도 감지 못한 상태라 모자를 눌러쓰고,
햇볕이 강해 선글라스와 자외선 차단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였다.
공공장소에서 휴대폰으로 수업을 하는 것도 낯설고 긴장됐다.
불편한 환경에서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마스크 뒤에 숨은 나, 그리고 영국 여성 튜터
연결된 튜터는 영국 출신의 여성.
처음부터 영국식 억양이 익숙하지 않아 살짝 당황했고,
튜터는 내가 쓴 마스크 때문에 내 말이 잘 안 들린다고 말했다.
사실, 마스크를 벗고 싶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얼굴을 전부 드러내는 게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결국 마스크를 벗었다.
상대는 시원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순간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
“자기소개 해보세요”라는 말에 움찔하는 나
튜터는 대뜸 자기소개를 요청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움찔했다.
나는 현재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멋지게 들릴 만한 뚜렷한 역할이나 타이틀도 없다.
그런 나를 소개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를 소개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 자신에게조차 이상하게 느껴지는 감정이었다.
내 소개는 간단히 했고,
곧 나는 튜터에게 이렇게 자기소개 하는 게 맞냐고 물었다.
튜터는 “사람마다 자기소개 방식이나 깊이가 다 다르기 때문에,
그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고 답했다.
그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공백의 시간과 내가 기대했던 리드
나는 이 대화가 튜터의 적극적인 리드로 채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몇 마디 질문을 하고는, 그 사이에 공백이 흘렀다.
그 침묵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나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그녀에게 되돌려 물어보는 방식으로,
그 공백을 메우려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었다.
질문을 던지는 건 의외로 쉽지만,
그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
그리고 내가 질문을 했을 때, 튜터 역시 명쾌한 답을 하지 못했다.
‘튜터니까 뭔가 다르겠지’ 했던 내 기대가 살짝 무너졌다.
원어민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는 “영어 원어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모두 훌륭한 대화 상대일 거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언어란 단지 ‘말하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콘텐츠, 생각의 깊이,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따라
대화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질문의 힘, 그리고 나의 성장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수준 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수준 있는 대답을 얻을 수 있다.”
그 말은 곧, 내가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내가 진짜 원하는 깊이 있는 통찰을
영어라는 도구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나는 단지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영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지금 당장 써먹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아닐까.
영어 공부는 때로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 나는 매번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화상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면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나를 돌아보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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