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고 귀여운 세계에 들어갔던 하루
유치원 방학이라
2박 3일 동안 손주를 봐주기로 했다.
—
👶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이유
할아버지가 출근하고
막내 손주와 나, 둘만 남은 아침.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말한다.
“할머니, 저 응가 마려우면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휴지 들고
할아버지 올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닦아줘야 되잖아요.” 한다.
할머니가 있는데
왜 할아버지를 기다리냐고 하니까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그 아이 머릿속엔
‘할아버지 = 가장 편안한 상태
= 응가해도 되는 시간’이라는 공식이
아주 기분 좋게 각인돼 있었던 모양이다.
늘 할아버지랑 목욕했고,
응가하면 할아버지가 물로 닦아줬고,
그래서 할아버지만 보면
유난히 “응가 마려워”라는 말을 했던 거였다.
어쩌면
그 편안한 습관을
지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
🎁 “형아는 컸어요?”
밥을 먹다가 또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묻는다.
“할머니, 뽑기는요… 형아는 컸어요?”
동네에서 500원, 1000원 넣고 하는
아이들 뽑기 이야기다.
“니가 보기엔 형아가 큰 것 같아?”
아이는 그렇다고 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냐고 했더니
형아는 컸는데도 뽑기를 한단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줬다.
“형아도 더 큰 형 만나면
또 애기되는 거야.”
장난기 가득한 눈, 살짝 몸을 흔들며
“그래요? 그렇구나! 몰랐어요.”
그 말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약속을 하나 했다.
밥 먹을 땐 밥에 집중하기,
먹고 나면 양치하기.
잘 지키면
뽑기 두 번.
그런데 아이의 애교는
언제나 약속보다 한 발 더 간다.
결국 네 번을 뽑았다.
—
🚌 “이거 꿈이야…”
이제 가자 싶었는데
아이가 갑자기 말한다.
“할머니, 편의점 가야 해요.
포켓몬 카드가 있어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아이는 너무 신이 나서 혼잣말을 했다.
“이거 꿈이야…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그러더니
자기 볼을 두세 번 꼬집는다.
얼마나 좋은 상상을 했길래.
—
🧩 기대는 두 장이었다
이마트 완구점에서
포켓몬 카드를 눌렀다.
가격은 5,000원.
상자를 열어보니
카드는 단 두 장.
60장을 모아야 게임이 된단다.
아이도 나도 당황했다.
바로 뭔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손에 남은 건 카드 두 장뿐이었다.
아이는 말한다.
“와… 미쳤다.
이걸 언제 다 모으냐.”
그러더니
“그냥 60개 다 들어 있는 걸
배달시키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한 장 한 장 모으는 게
기다리는 연습이라고 말했다.
실갱이를 하다 아이에게 말했다.
“오늘 할머니는 약속한 건 다 지켰어.
그러면 너도 계속 떼쓰면 안 되지.”
그랬더니 아이가
빙빙 돌다 마음을 고쳐 먹은 듯
조금 큰 소리로 말한다.
“그런데 할머니,
이 포켓몬 카드보다
내가 할머니 사랑하는 게 더 커요.”
아이를 꼭 안고
뽀뽀를 해줬다.
—
🍦 “할머니는 부자예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는 길.
아이가 말한다.
“할머니는 부자예요.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좋아졌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오늘 돈이
계속 나오잖아요.”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인다.
“와… 돈이 안 떨어져서 좋겠다.”
—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이는 계속 말했다.
“할머니 사랑해요.”
“할머니가 참 좋아요.”
그 말이
오늘 하루의 결론 같았다.
돈도, 뽑기도, 포켓몬 카드도
뻐근한 허리통증도
결국은 다 지나가고
남는 건 이 말 한 줄.
할머니 사랑해요.
—
© Aboha Unni — 실제 삶을 바탕으로 글쓰기·영어·투자를 이어가는 개인 아카이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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